서울연극제, 조혜련과 패왕별희 그리고 안민석

서울연극제, 조혜련과 패왕별희 그리고 안민석

전세게 60억의 인구가 한명도 얼굴이 같은 사람이 없다. 물론 이란성 쌍둥이 혹은 일란성 쌍둥이들이 있기는 하지만, 완전히 같은 인격체나 동일인이 될수는 없는 것이다. 외모가 그럴진데 그 성향 즉 퍼스널리티는 전혀 같은 사람이 존재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아니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우리는 공통점 혹은 유사점 혹은 특이점들을 각각의 카테고리별로 분류를 하면서 그래도 무엇인가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 내고자 한다. 유사이래 인간의 노력은 일관되게 하나의 방향을 향해 움직여 왔다. 그 양태와 속사정은 다를지언정 하나의 일관된 목표 그것을 위해 인류의 역사는 발전해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 이다.

 

오늘 기자가 다루고자 하는 내용은 우리 예술문화계의 현주소에 대한 간략한 스케치이다.   과거 최서원씨등 관계자들의  불법 행동들이 우리사회를 엄청난 충격속으로 빠뜨린적이 있다. 이런 저런 사람들이 연계가 되었으며 그들은 그들의 불법과 탈법을 강력한 권력의 힘을 빌어, 사자의 탈을 쓴 여우처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집요하리 만큼 열심히 노력했다고 한다. 일세를 풍미하는 듯했다. 그리고 종국에는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파국을 맞이했지만, 그전까지 그들의 위세는 가히 하늘을 나는 새들도 떨어드릴만큼 쩌렁쩌렁하게 세상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권불십년의 오묘한 이야기를 궂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듯하지만. 지금도 우리 그 과거 태풍과 같던 소용돌이 속에 우리 예술문화계가 한중심에서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는 어찌 보면 썸뜩하리만큼 놀라운 현실에 대한 직시도 점차 그 시효가 줄어듦에 비례해서 우리 사회의 저변에 널린 망각의 깊은 늪으로 빠져들어가는 것 같다.

두번 다시는 그와 같은 우리 시대의 비극적인 범죄행위가 발생해서는 안될것이다.

 

 

서울연극제 그 시작을 알리다.

 

서울연극제

서울연극제 (C)

 

“무대에서 죽고 싶습니다.” 어느 연극 프레스콜에서 개그맨 같이 생긴 가수가, 꿈에도 그리던 연극 연기자로서의 포부를 이야기 하니 좌중은 그가 가수임에도 불구하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렇다 무대는 배우의 마지막 안식처로서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특히 젊은 그러나 예술에 대한 열정만은 풍부한 그러면서 가난한 예술가들의 상징인 대학로 연극무대에서 중견배우가 방송이나 영화에 진출해서 멋지게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와신상담 절차탁마 하루 하루 일신우일신,  배우고 익혀야 하는 젊은 에술가들에게는 무대는 그야말로 그것이다. 행복. 그곳이다. 헤븐.

 

모든 연극인들이 꿈은 돈을 버는것은 아니다. 물론 유명인이 되어 방송이나 영화계에서 주목받는 그런 모습도 일부 필요하지만, 정작 중요한것은 연기자로서의 삶과 인간으로서 소박한 자기만족인 것이다.그렇기에 아무리 어려운 현실의 고통도 잠시의 동료들과의 담배한까치와  선후배들과 친구들과의 소주한잔으로 잊고 더 힘찬 내일을 위해 일년을 하루같이 10년을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일관되게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젊은 연극인들의 몇안되는 국내에 등용문이 있으니 이름하여 서울 연극제가 이제 그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서울연극제2

 

“ 중견희극인 조혜련과 배우들이 뭉쳤다. 대학로 연극무대를 웃음과 감동으로 수놓는다. “

 

흔히들 이맘때즈음, 봄이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무엇일까? 요즘에 길마다 벗꽃들이 세상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겨우내 움추려 있던 세상은 아름답게 피어나는 멋들어진 벗꽃들처럼 화사하고 소담스럽기 그지 없다.  하지만 실상 그 유효기간은 길어야 10일. 비나 바람이라도 한번 부는 날에는 그야말로 세상 예쁘게 피던 꽃들이 많이 떨어지곤 해서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한다. 그래서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이 있지 않았는가? 그러나 소나무는 늘 변하지  않는다. 물론 정이품송 처럼 오래되고 그 삶에 무게가 세월에 비례해서 나이테가 두꺼운 나무들이야 그 색갈이 상록수에서 갈색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소나무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늘 변함없이 초록생을 즉 상록을 유지한다. 세상을 살다보면 한해 한해 나이를 먹어가면서 변치않는것에 대한 가치라는 것은 점점 더 그 중요성이 증대되는것으로 보인다. 우리 주변에서 늘 변하지 않는 소나무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몇몇 있다. 그중에 엄마의 이야기는 늘 언제나 자리 한구석을 차지하는 단골레파토리이다. 왜 아빠는 별로 없는데 엄마는 늘 함께 인구에 회자되는가? 바로 그것은 소나무와 같은 바다와 같은 저 파란 하늘에 떠있는 밤하늘의 별들처럼, 늘 변함없이 자식들을 돌봐주고 사랑으로 지켜주기 때문이다. 아무리 고관대작이어도 아무리 부자여도 그리고 평범한 가정의 자녀일지라도 대동소이하게 엄마의 사랑은 늘 멋지고 아름답고 더해서 감동스러운 이야기 이고 소재이고 주제이다.

 

조혜련

 

 

중견희극인 조혜련이 이번에 멋지게 연극작품을 준비했고, 그 여세를 몰아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소재는 자신의 이야기와 싱크가 되기도 하는 모든 이시대의 엄마들의 이야기라고 할수 있는 ‘엄마가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을 무대’위에 표현했다.  한국방송 아나운서 출신의 김경란을 비롯해 주조연들의 맛깔나는 연기는 이 연극의 감초같은 역할을 함에 부족하지 않다. 그러나 역시 이 연극의 백미는 이제는 브라운관을 넘어 연극무대에 까지 그 아우라를 펼치고 있는 연극제작자 겸 배우 조혜련의 인간적인 면모를 들여다볼수 있는, 그간 그가 보여주었던, 웃음 찰진 희극에서 조금더 진일보한 그의 연기 감동깊은 스펙트럼을 확인하는것이 적지 않는 관객과 평단의 소득일것으로 보인다.

 

패왕별희를 우리 국악으로 표현했다. 국립 창극단

 

한참 홍콩르와르 영화의 대명사로 불리는 영웅본색,  첩혈쌍웅 같은 액션 영화들이 우리 영화계를 폭발적으로 잠식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당시 학창시절을 보내던 영화팬들은 주윤발, 장국영, 그리고 왕조현을 잊을수 없다. 그중에서도 가수이자, 배우로 일세를 풍미한 장국영의 연기는 가희 최고수준의 경지에 까지 오른 대표적인 홍콩 출신 배우이다. 그가 그의 연기의 내면의 깊이와 외연의 성장을 한단계 더욱 일취월장시킨 작품이 바로 패왕별희이다. 내용은 중국 역사에서 비롯한 항우와 유방의 그유명한 대결에서 유래한다. 대부분의 스토리라인이 승자인 유방에게 촛점이 맞추어지는듯 하지만, 패장이면서 한때는 적수였던 유방을 살려주면서 후대했던,  항우와 그의 연인의 비극적인 사랑의 이야기를 중국의 경극으로 풀어낸것이 패왕별희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장국영과 패왕별희 만큼은 아니지만, 이번에 우리 국립창극단이 국립극장에서 무대에 올렸다. 무제한적인 시공간에서 방대한 스케일을 모든가용한 수단을 동원해서 표현하고자 하는 노력이 영화에서 가능했다면,  이번에 국립극장에 올려진 패왕별희는 우리 국악과 창의 관점에서 그 특유의 애절한 그러면서 정감있는 다소 소박하지만, 부드럽게 표현하고 자 했던 노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패왕별희-프레스콜

국립극장에서 열린 패왕별희 프레스콜 간담회 장면

 

 

국회의원 안민석의 편지 – 벚꽃은 피는데 봄은 멀리 있고

 

남녘에는 벌써 봄기운을 흠뻑 머금은 벚꽃 망울이 터지기 시작했다. 금세 온산이 황홀한 붉은 빛으로 물들면 세상은 봄의 향연에 빠져들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봄을 기대하는 이 순간에 신변의 위협을 느끼면서 정의를 위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기를 바라는 세 사람이 있다. 정준영 카톡을 권익위에 전달하여 버닝썬 사건을 권력과 유착 고리의 단초를 제공한 제보자, 장자연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용감하게 세상 밖으로 나온 윤지오라는 젊은 여성, 그리고 김학의 성폭행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는 박관천 경정을 국민들은 지켜야 한다.

정준영 카톡을 제보한 사람은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경찰을 통하지 않고 권익위에 제보한 것은 경찰을 믿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경찰에 제보했는데 묵살당했다면 그 경위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이미 지난 가을과 올초 두 차례에 걸쳐 경찰에 제보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기에, 제보자는 그때 버닝썬과 경찰과의 유착을 의심하고 국가권익위에 제보하기로 결심하였다’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일각에서 제기되는 음모론을  해소할 수 있으므로, 정준영 카톡과 관련하여 권익위에 제보가 있기 전에 경찰에 제보가 있었는지에 대한 경찰의 특별감찰이 필요하다. 제보자가 일하는 곳으로 추정되는 포렌식 업체를 경찰이 압수수색한 것은 제보자를 위협한 행위로 경찰은 의심받아 마땅하다. 제보자를 보호해야 할 경찰이 오히려 제보자를 위협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신변의 두려움을 느낄 것이 뻔하지 않겠는가? 경찰이 의심을 불식하려면 제보자 신변을 보호하여 더 이상 두려움에 떨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장자연 사건은 권력층과 직결된 사건으로 지난 10년간 묻힌 사건을 다시 세상 밖으로 꺼낸 이가 바로 윤지오씨다. 그녀는 같은 소속사에서 활동한 장자연의 후배로 지난 10년간 정의로운 세상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번 기회에 세상에 진실을 알렸다. 장자연 사건은 최고 언론권력과 정치권력이 뭉개버린 미궁에 빠져있는 사건이다. 만약 윤지오씨가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면 권력자들의 의도대로 장자연 사건은 공소시효 만료로 재수사조차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신변의 위협 때문에 사설 경호원을 채용하고 있다고 한다. 경찰은 지금이라도 윤지오 씨의 신변보호를 위한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용기를 내어 진실을 밝히고자 투쟁하는 윤지오씨가 신변의 위협을 느낀다면 촛불을 든 국민이 원하는 정의로운 세상이 아니다. 거악에 맞서는 윤지오씨의 용기를 응원하는 국민적 지지가 윤지오 씨께 위안이 되고 버팀목이 될 것이다.

박관천 경정은 김학의 성폭행 사건의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있는 사람이다. 김학의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는 사람이 최소 열 명은 될 것이다. 청와대부터 법무부, 검찰, 경찰에 이르기까지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만 진실을 밝히기 위해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이것이 현실이다. 5.18 광주 민주화 항쟁 시 전두환이 5월 21일 광주에 와서 사격명령을 하였는지 여부가 큰 논란이지만 지금까지 전두환이 그날 광주에 왔다고 증언하는 사람은 두 사람에 불과하다. 돌이켜보면 박관천은 최순실이 권력서열 1위라고 말했을 만큼 배짱 있고 용기 있는 인물로 국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그는 용의주도하고 신중하며 입이 무거운 인물이다. 그러나 검찰이 김학의 사건을 재수사하게 되면 박관천은 용기를 내어 판도라 상자를 열 것이고,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두 번이나 헌신한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경찰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이를 두려워하는 자들이 지금 박관천을 위협하고 있다.  촛불 국민들이 나서서 박관천 경정께 용기를 그를 지켜야 할 것이다.

벚꽃은 만개를 기다리고 있지만 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세 사람에게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이들에게는 두려운 봄이 오고 있다. 이들을 지켜주지 못하면 정의로운 세상 대신 기득권층과 권력층이 득세하는 불의의 세상이 반복될 것이다. 경찰과 국민들이 세 사람을 지켜서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길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길 간절히 기도한다.

 

 

 

윤석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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